현 세계 챔피언 현 동양 챔피언 현 한국 챔피언 역대 세계 챔피언 역대 동양 챔피언 역대 한국 챔피언 세계타이틀 전사
역대 세계 챔피언
김 기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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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BOXING WORLD CHAMPION HISTORY\"
“세계 챔피언”은 실력만으로 될수 없다 라는 복싱계 속설이 있다. 어떤 이는 한술 더 떠 “운칠기삼” 이라는 말로 세계 챔피언을 표현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실력이 없으면 운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1965년 12월 서강일 선수가 세계 도전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래, 한국복싱은 지금까지 43명의(WBA, WBA, IBF 타이틀수 51개) 세계챔피언을 탄생 시켰다. 이중에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도 있지만 복싱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들도 있다.
한국복싱 70여년의 역사중 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43편의 성상들을 REMIND 해본다.




제 1편 Gi-Soo, Kim
WBA Jr.MiddleWeight Champion
“한국 복싱사에 큰 획을 그은 최초의 세계 챔피언”  
김 기 수

출 생 1939년 9월17일 ~ 1997년 6월 10일 / 북청
신 장  175cm
통산전적  37전 33승(18KO) 2무 2패
소 속  권일권투체육관
매니저  김학수
스타일  사우스포
타이틀  KBC 미들급(1961), OBF 미들급 (1965,1969),
        세계 JR.미들급(1966) / 2차방어


어느 분야든지 최초라는 의미는 모든 것을 제쳐 두고서라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김기수는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으로써, 복싱사에 영원히 기록될 한국 복싱계의 거목이다.

그동안 초대 세계 챔피언이라는 빛에 가려 그의 복싱 실력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자료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김기수의 복싱이 과연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해 볼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1959년 도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비롯하여 각종 아마추어 대회를 석권한바 있는 출중한 아마추어 기록을 갖고 있으며, 8년의 프로 경력중 단 2패만을 기록하고 은퇴한 점, 판정을 기대하기 힘들었던 당시의 여건에도 불구하고 10여 차례의 원정경기에서 승리한 점 등이 그의 복싱 실력이 어느정도 인가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특히, 세계 챔피언 출신으로는 홍수환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태국의 홈링 텃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기록이 있어, 그가 호사가들의 입방정(?)처럼 운이 좋아 세계 챔피언에 오른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김기수는 1960년 로마 올림픽 준준결승전에서 이 대회 우승자이자 6년후, 자신에게 세계 타이틀을 내주게 되는 이탈리아의 니노.벤베누티에게 쓰라린 패배를 당한후, 프로로 전향했다. 주위의 권유도 있었지만 아마추어에서는 더 이상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때의 실적을 인정받아 프로데뷔 2전만에 한국타이틀을 차지하게 된 김기수는 15전째 동양타이틀, 그리고 10번의 경기를 더 치른후 대망의 세계 타이틀에 도전하는 출세가도를 달린다.
당시로는 기록적인 어마어마한 5만5천 달러의 대전료를 지불하고 치루어진 김기수의 세계 도전은 상대가 상대인 만큼 정상적인 경기운영으로 승리를 거두기엔 무리가 있었다.
챔피언 니노.벤베누티는 이미 아마에서 김기수에게 한차례 승리한 경험이 있었고, 당시 65연승 (26KO) 이라는 어마어마한 전적을 보유하고 있어 잘못하다가는 엄청난 외화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1966년 6월 25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현장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실로 엄청난 부담과 무거운 짐을 안고 장충체육관 링에 오른 김기수는 시종일관 히트 앤 어웨이, 히트 앤 크린치 전법을 적절하게 구사하며 초반에 얻은 점수를 끝까지 지킨 끝에 첫 번째 세계 타이틀을 자신의 조국에 선사한다.
이 경기현장에 후일 대한민국 복싱의 대명사가 되는 고등학생 홍수환이 자신의 영웅인 김기수를 동경하며 응원을 하고 있었다.

사우스포 특유의 카운터 펀처로 예리한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앞세워 승수를 쌓아간 김기수는 비록 3차례 방어전을 고전으로 채색 했지만, 그의 존재 가치와 의미는 타이틀을 얼마나 방어 했는가?로 가늠하기에는 너무나 큰 거목으로 다가온다.
본인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모두가 어렵던 그 시절에 밥상에 오른 달걀을 아이들에게 주지 못하고 혼자서 삼켜야 했다는 일화의 아픈 기억만큼이나 그의 성공담은 많은 사람들에게 찐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못먹고 못입던 그 시절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김기수.
그가 바로 대한민국이 배출한 자랑스러운 첫 번째 세계 챔피언이었다.

너무나 아쉬운 나이에 일찍 우리의 곁을 떠난 김기수 챔피언의 명복을 빕니다.

PS 현재 \"김기수 기념사업회\"가 설립되어 운영중이며, 그의 제자였던 KBC 이기현 이사가 기념사업회 대표를 맡아 김기수 챔피언의 영광을 재조명하고, 한국복싱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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