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세계 챔피언 현 동양 챔피언 현 한국 챔피언 역대 세계 챔피언 역대 동양 챔피언 역대 한국 챔피언 세계타이틀 전사
역대 세계 챔피언
권 순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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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전적 :
“KOREA BOXNG WORLD CHAMPION HISTORY\"
“세계 챔피언”은 실력만으로 될수 없다 라는 복싱계 속설이 있다. 어떤 이는 한술 더 떠 “운칠기삼” 이라는 말로 세계 챔피언을 표현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실력이 없으면 운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1965년 12월 서강일 선수가 세계 도전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래, 한국복싱은 지금까지 43명의(WBA, WBA, IBF 타이틀수 51개) 세계챔피언을 탄생 시켰다. 이중에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도 있지만 복싱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들도 있다.
한국복싱 70여년의 역사중 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43개의 성상들을 REMIND 해본다.


제13편 Sun-Chun, Kwon
IBF Flyweight Champion
“돌발적인 왼손잡이 강타자”  

권 순 천
출 생 1955년 9월 15일 / 김포
신 장  164cm
통산전적  34전 26승(17KO) 3무 5패 <1977.10.16 ~ 1987.5.17>
소 속   극 동
매니저  전호연
스타일  레프트 파이터
타이틀  OPBF Jr.밴텀급 (1981), IBF 플라이급 (1983) / 5차방어


1977년 당시에는 비교적 늦은 나이라고 할수 있는 22세의 나이에 프로에 데뷔한 권순천은 이미 아마츄어에서부터 대기의 핀린을 보였던 선수였으며, 프로 데뷔후 최고의 선수들을 배출하였던 80년 신인왕을 우승 하면서 자신의 복싱 인생을 개척해 나간 대기만성형의 챔피언이다.
신인왕 우승 이후 9전째부터 줄곧 국제전을 갖으며 비즈니스를 담당했던 극동의 유망주로써 조용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사우스포답지 않은 저돌적인 파이터로 후퇴를 모르는 감투 정신이 돋보인 반면, 경기의 기복이 다소 심헤 잘할때와 못할 때가 극명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권순천은 외형적인 실적만으로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사우스포 파이터형이지만 상당히 근사한 디펜스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돌발적인 원펀치의 또한 상당한 파괴력을 장전하고 있어, 자칫 방심하는 상대는 한순간에 경기를 잃고 말았다.
OPBF 챔피언 시절에는 후에 WBC 세계 챔피언에 오르는 태국의 파야오.폴타라트를 셧아웃 시킬 만큼 실력을 갖춘 챔피언이다.

권순천은 데뷔 이후 줄곧 플라이급에서 활동하여 그의 네츄럴 체급은 플라이급이었다. 애초 극동에서는 1983년 10월 제주도 한라체육관 개관 기념으로 개최한 WBA플라이급 타이틀매치에 권순천을 내보내기로 계획을 하며 챔피언 산토스.라시아르를 불러 들이는 계약을 체결 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당시 OPBF Jr.밴텀급 타이틀을 보유 하며 WBA 동급 1위였던 권순천에게 일본의 챔피언 와타나베.지로측 으로부터 지명 도전의 오퍼가 왔고, 극동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기 위하여 꾀를 내고 애초 권순천이 도전하기로 했던 WBA 플라이급은 또다른 유망주인 신희섭을 내보내고 같은 시기에 권순천은 일본으로 날아가 와타나베의 타이틀에 도전한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극동의 꾀를 거부 하였다.
신희섭은 국내에서 라시아르에게 허무하고 무참한 1R KO패를 당하였고, 적지 일본으로 날아간 권순천은 그러나 후에 명챔피언 반열에 오르는 와타나베를 맞아 돌발적이고 거친 경기운영으로 비록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 했으나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버렸다.
또 다시 역사에 IF를 단다면, 만약 애초 계획대로 권순천이 국내에서 플라이급으로 라시아르를 상대 했다면 상당히 다른 경기양상,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 예상 해본다.

결국 권순천은 WBA 도전 실패 이후 곧바로 새롭게 출범한 IBF로 방향을 틀었고 1983년 12월24일 챔피언에 오른다. 그는 상당히 거칠고 과격한 복싱을 펼쳤지만 힘의 안배를 교묘하게 결합시켜 15R 경기를 4차례나 소화해 냈고, 감량의 고통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차례나 타이틀을 지켜내는 저력을 발휘한다.
물론, 한수 아래로 평가되던 정종관에게는 무려 3번의 경기 모두 기대에 못미친 경기력을 보인것도 사실이지만 당시 30을 넘기고 있던 그의 연령을 감안해 볼때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역사가 일천한 Jr.밴텀급, 그 중에서도 아시아가 강한 강했던 시절에 동양 타이틀 4차방어, IBF타이틀 5차방어를 이루어 냈으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가짜 선수 사건 이후 정신적인 충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 이상 타이틀을 지켜낸 점은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사우스포 스타일의 선수로는 매우 익사이팅한 파이팅을 보여 주었던 화끈한 챔피언으로 복싱 팬들의 뇌리에 기억 되고 있다.




PS. 권순천 챔피언은 은퇴 이후 잠시 개인사업에 매진 하다가 10여년전 복싱계에 다시 복귀하여 신도체육관을 운영 하면서 채승석, 조용인, 조희재 등 많은 챔피언들과 유망주들을 배출하는 등 훌륭한 지도자로 활발하게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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