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세계 챔피언 현 동양 챔피언 현 한국 챔피언 역대 세계 챔피언 역대 동양 챔피언 역대 한국 챔피언 세계타이틀 전사
역대 세계 챔피언
박 종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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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BOXNG WORLD CHAMPION HISTORY\"
“세계 챔피언”은 실력만으로 될수 없다 라는 복싱계 속설이 있다. 어떤 이는 한술 더 떠 “운칠기삼” 이라는 말로 세계 챔피언을 표현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실력이 없으면 운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1965년 12월 서강일 선수가 세계 도전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래, 한국복싱은 지금까지 43명의(WBA, WBA, IBF 타이틀수 51개) 세계챔피언을 탄생 시켰다. 이중에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도 있지만 복싱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들도 있다.
한국복싱 70여년의 역사중 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43개의 성상들을 REMIND 해본다.


제17편 Jong-Pal,Park  
IBF Super-Middleweight & WBA Super-Middleweight Champion
“한국 중량급의 대들보이자 숱한 화제를 뿌린 동양의 무적함대”  

박 종 팔
출 생 1960년 8월 11일 / 무안
신 장  178cm
통산전적  53전 46승(39KO) 1무판정 3무 5패 <1977.11.26 ~ 1988.12.22>
소 속   동 아
매니저  김현치
스타일  라이트 복서겸파이터
타이틀  KBC미들급(1978) ,OPBF 미들급 (1980,83)
        IBF슈퍼미들급(1984) / 8차방어, WBA슈퍼미들급(1987) / 1차방어


김기수, 유제두의 한국 중량급 황금 계보를 잇는 명인으로 홍수환과 더불어 복싱을 대중적인 스포츠로 끌어 올린 공로가 있는 인기 챔피언이다.

1977년 11월 19세의 나이로 데뷔한 박종팔은 그해 신인왕에 오르며 대기의 핀린을 보이면서 5전만에 한국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노장 강흥원에게 불과 1R KO패를 당하며 일찍이 프로의 쓴맛을 맛보았다.
그러나 박종팔은 생애 첫 타이틀 도전에서의 패배를 거울 삼아 이후 경이로운 19연속 KO승을 기록하며 한국타이틀, 동양타이틀을 거침 없이 집어 삼키고 세계무대로 진출하기 시작 했다. 당시 경량급 복싱에 젖어있던 복싱팬들에게 호쾌한 중량급파워복싱의 참맛을 느끼게 한 박종팔은 한국 중량급의 황금 계보를 잇는 스타 선수로 상당한 인기를 자랑 했으며, 중량급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심감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당시의 미들급 세계 챔피언은 난공불락이라고 일컬어지던 통합 챔피언 마빈.헤글러였다. 동양에서는 무적 함대였지만, 헤글러의 유명세 때문에 세계 타이틀 도전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동아의 김현치 사장은 이런점을 간파하고 박종팔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하여 헤글러에게 도전한바가 있는 오벨메히야스와 도전자 결정전 성격의 시합을 추진하여 베네주엘라 원정을 감행 하는 승부수를 띄운다. 1981년 11월 논타이틀전임에도 불구하고 MBC 위성 생중계가 될만큼 인기과 관심을 끈 중요한 시합에서 박종팔은 세계 중량급의 두터운 벽을 넘지 못하고 프로 데뷔 이후 두 번째 좌절을 맛본다.

다시 시작하게된 박종팔은 이후 동양타이틀 방어에 전념하며 6연속 KO방어를 기록하지만 16차 방어전에서 운명의 상대 나경민을 지명 도전자로 만난다.
1983년 당시 세계 타이틀전을 능가하는 엄청난 관심과 숱한 화제를 뿌리며 치루어진 나경민과 2연전은 복싱의 인기를 수직 상승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최고의 시합이었다. 입추의 여지없이 문화체육관을 가득 메운 복싱팬들 앞에서 두 선수는 그야말로 복싱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 주며 한국 복싱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전 명승부라 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작품을 팬들에게 선사한 것이다.

1차전 통한의 패배를 딛고 곧바로 이어진 리매치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둔 2차전은 박종팔의 집념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확인시켜준 한판이었다. 복수에 성공하며 OPBF미들급 타이틀을 다시찾은 박종팔이었지만, 그러나 이미 미들급 한계 체중을 맞추기에는 너무 힘이 들었고, 3개월뒤 OPBF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접수하며 체급을 상향 조정하기에 이른다.
1984년에 접어들자 때마침 불어닥친 IBF 열풍이 한국 복싱계를 휩쓸고 있었고, 라이트헤비급으로 세계 정상을 노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점을 간파한 동아의 김현치 사장은 IBF에서 신설한 슈퍼미들급으로 박종팔의 첫 세계타이틀 도전을 성사 시킨다. 1984년 7월 22일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첫 세계 도전에서 수준급의 챔피언 머레이.서덜랜드를 맞은 박종팔은 선제다운을 극복하고 멋진 역전 KO승을 거두며 대망의 세계정상에 오른다.

이후 박종팔은 3년간 IBF타이틀을 8차례나 방어한 후 반납하고, 1987년 12월 메이저 기구인 WBA 슈퍼미들급 타이틀까지 접수한다. 그러나 2차 지명 방어전에서 만난 천적 오벨메히야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타이틀 풀면서 그의 화려했던 복싱 인생도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 한다.

중량급 복서에게 볼수 없었던 뛰어난 스피드와 감각적인 보디 공격은 박종팔 복싱의 전매특허였고, 많은 후배 선수들이 보고, 배우며 그들의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특히, 날카롭고 빠른 리드 잽과 호쾌하게 터지는 레프트 더블은 경외감마저 느끼게 하는 박종팔 복싱의 진수였다.

80년대 한국 프로복싱 르네상스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중량급의 대들보이자
동양의 무적함대였으며, 12번의 세계 타이틀매치 가운데 단 1패만을 기록했던 뛰어난 실력의 챔피언이었다.



PS. 박종팔 챔피언은 은퇴 이후 줄곧 개인 사업에 매진하다가 최근 서울 장안동에 체육관을 개관하고 복싱계에 컴백하여 현재 열정적으로 후배양성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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