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세계 챔피언 현 동양 챔피언 현 한국 챔피언 역대 세계 챔피언 역대 동양 챔피언 역대 한국 챔피언 세계타이틀 전사
역대 세계 챔피언
유 명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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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전적 :
“KOREA BOXNG WORLD CHAMPION HISTORY\"
“세계 챔피언”은 실력만으로 될수 없다 라는 복싱계 속설이 있다. 어떤 이는 한술 더 떠 “운칠기삼” 이라는 말로 세계 챔피언을 표현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실력이 없으면 운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1965년 12월 서강일 선수가 세계 도전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래, 한국복싱은 지금까지 43명의(WBA, WBA, IBF 타이틀수 51개) 세계챔피언을 탄생 시켰다. 이중에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도 있지만 복싱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들도 있다.
한국복싱 70여년의 역사중 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43개의 성상들을 REMIND 해본다.


제20편 Myung-Woo, Ruh  
WBA Jr. Flyweight Champion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위대한 복싱 영웅”  

유 명 우
출 생 1964년 1월 10일 / 서울
신 장  162cm
통산전적  39전 38승(14KO) 1패 <1982.3.28 ~ 1993.7.25>
소 속   대원-동아
매니저  김현치
스타일  오른손 파이터
타이틀  OPBF Jr.플라이급 (1985)
        WBA Jr.플라이급(1985,92) / 17차방어, 1차방어


Jr.플라이급 최다 방어 기록 보유자, Jr.플라이급 세계전 사상 최단 시간 KO 방어 기록(1R 2분46초), 한국이 배출한 세계 챔피언중 최다 방어기록(17연속), 국내 선수중 가장 많은 세계전(21회), 최다 연승 기록자(36연승) 등등 유명우를 소개하는데 있어 필요한 수식어는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물론 프로복싱이 기록 경기는 아니지만 유명우가 현역시절 이룬 각종 기록은 한국 프로복싱의 자랑이며 유명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많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유명우를 가장 높게 평가할수 있는것은 그가 이룬 외형적인 기록이 아닌 현역시절 보여 주었던 그의 환상적인 “디펜스 복싱”이다.
바로 이 부분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는점이, 유명우는 현역시절 단 한차례의 다운을 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합중 위기에 빠진적도, 심지어는 큰 펀치조차 허용하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복싱을 보여준 것이다. 통산 전적 39전, 이중 세계타이틀매치를 21회나 치룬 선수가 이 같은 기록을 갖고 있다는 점은, 실로 불가사의 하다고 할수 있으며 유명우를 “복싱의 달인”이라고 칭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디펜스 복싱의 달인을 칭할 때 세계 각국의 저명한 전문가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로베르토.두란을 꼽는다. 디펜스의 달인들인 알리나 레너드, 메이웨더를 제쳐 두고 두란을 꼽는 이유는 그의 디펜스가 수비적인 것이 아닌 물러서지 않는 공격적인 디펜스이기 때문이다.
복싱에서 가장 이상적인 스타일이 바로 이 물러서지 않는 공격적인 디펜스라고 할수 있는데,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장 어려운 기술이 디펜스라고도 할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싱에서 디펜스를 구사할 능력을 갖추면 복싱의 반 이상을 마스터 했다고 표현 할 것이다.
발로 도망가지 않고 상대방의 바로 가슴팍 아래서 자유자재로 디펜스를 구사 하면서 공략하는 복싱은 보기에도 호쾌하며 가장 극명하게 복싱의 카타르시스를 느낄수 있는데, 유명우는 세계 그 어느 위대한 챔피언, 전문가들이 톱으로 꼽는 두란에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 환상적인 디펜스 복싱을 보여준 점은 그가 한국 복싱이 배출한 위대한 챔피언인것이 자랑스러운 이유이다.

유명우는 데뷔후 13연승을 기록하였지만 펀치가 없는 부지런한 복서로만 알려졌다.그러나 복싱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타이밍 잡는법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소속 선배들의 운동 모습을 보면서 익힌 보디 블로우 구사 방법까지 익히면서 그의 주먹에 불이 붙기 시작 했다. 데뷔 14전만에 치룬 첫 국제전에서 리틀.바기오를 상대로 첫 KO승을 이끌어 내고 이후 곧바로 수준급의 국내 라이벌 정비원을 잡은후 곧바로 OPBF타이틀을 접수 하였다. 이후 부터 거침없이 내달리며 복싱 관계자들로부터 차기 세계 챔피언감으로 물망에 오르기 시작 했다.

유명우의 잠재력을 간파한 동아의 김현치 사장은 그를 스카웃했고, 소속을 이적한 후 OPBF타이틀 2연속 KO방어를 기록한 후 대망의 세계 도전을 눈앞에 두게 되었지만 당시 국내 또 한명의 전도양양한 유망주인 손오공측의 어필로 인하여 KBC는 두 선수가 대결하여 승자가 세계타이틀에 도전하도록 지시를 한다. 그리하여 한국 복싱사에 또 한편의 명품 라이벌전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1985년 9월 6일 문화체육관에서 벌어진 세계타이틀 도전자 결정전에서 손오공을 맞은 유명우는 당시 전문가들의 언더독 평가를 받고 링에 오른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유명우는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낼만큼 환상적인 경기를 펼친 끝에 라이벌 손오공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세계 타이틀 도전 티켓을 따낸다.

1985년 12월 8일 소속사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선배인 최문진이 실패한 챔피언 조이.올리보를 안방으로 불러들인 유명우는 당시 수방사 소속의 현역 일등병이었다. 장신의 챔피언을 맞아 시종일관 전진 끝에 상당히 고전이었지만 데뷔후 3년, 18연승 끝에 대망의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챔피언에 오른 유명우는 첫 방어전부터 부담스러운 지명방어전을 치루어야 했는데, 상대는 챔피언 클래스인 호세 데 헤수스였다. 유명우가 기록한 레코드중 톱3안에 들어가는 명승부였던 이 경기는 당시 최절정의 기량에 달해 있던 유명우 복싱의 모든 것을 보여 주면서 그의 위대한 대장정의 신호탄을 힘차게 쏘아 올린다.  

이후로 이 클래스에서 제법 한다하는 선수들을 모조리 해지우며 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장기집권 체제를 굳건히 하면서 복싱 팬들에게 주옥 같은 명승부들을 선사 했다. 특히나 Jr.플라이급의 한계체중인 48.980kg을 그 긴 기간동안 유지 하면서 17차 방어의 위업을 이룬 것은 그가 얼마나 인내하며 성실한 복서였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그는 집권 초창기에는 뛰어난 스테미너를 바탕에 둔 특유의 소나기 복싱으로 왕성한 파이팅력을 보여 주었고, 경험이 붙은 중기 시절에는 인파이팅과 아웃복싱을 구별해 구사 했으며, 집권 후반기에는 노련한 복싱이 무언가를 보여 주며, 위대한 복서의 사이클링을 가감없이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자의반,타의반 숙명적 관계였던 장정구와의 “드림매치”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유명우는 장정구와 함께 최고의 복서 1~2위를 다투는 한국 프로복싱이 낳은 보물이기도 하다. 발을 쓰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가드와 유연한 보디웍을 자유자재로 구사 하면서 근접거리에서도 결코 상대방의 결정적인 펀치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신체조건에 어울리지 않게 선제 리드 잽을 유연하게 구사 하면서 찬스를 잡았을때 폭풍처럼 몰아치는 “소나기 펀치”는 유명우 복싱을 함축적으로 말해주는 아이템으로써 오늘날후배들이 복싱의 교과서로 활용할만한 교본이라고 할수 있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한국 복싱이 배출한 최고의 챔피언, 그가 바로 유명우이다.


PS. 유명우 챔피언은 은퇴 이후 줄곧 개인사업에 매진 하면서 2012년 1월 한국권투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재직 하였으며, 본업인 후배양성을 위하여 지난 2013년 1월 21일 사무총장직을 사직하고 본격적인 프로모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한편 유명우 챔피언은 아시아에서 세번째, 한국에서  두번째로 2013년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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