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세계 챔피언 현 동양 챔피언 현 한국 챔피언 역대 세계 챔피언 역대 동양 챔피언 역대 한국 챔피언 세계타이틀 전사
역대 세계 챔피언
박 찬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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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BOXNG WORLD CHAMPION HISTORY\"
“세계 챔피언”은 실력만으로 될수 없다 라는 복싱계 속설이 있다. 어떤 이는 한술 더 떠 “운칠기삼” 이라는 말로 세계 챔피언을 표현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실력이 없으면 운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1965년 12월 서강일 선수가 세계 도전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래, 한국복싱은 지금까지 43명의(WBA, WBA, IBF 타이틀수 51개) 세계챔피언을 탄생 시켰다. 이중에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도 있지만 복싱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들도 있다.
한국복싱 70여년의 역사중 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43개의 성상들을 REMIND 해본다.


제7편 Chan-Hee, Park
WBC FlyWeight Champion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복싱 천재”  

박 찬 희
출 생 1957년 3월 23일 / 대구
신 장  163cm
통산전적  23전 17승(6KO) 2무 4패 <1977.7.9 ~ 1982.12.12>
소 속   세 기
매니저  서순종
스타일  라이트복서
타이틀  WBC 플라이급(1979) / 5차방어


박찬희는 데뷔후 한국, 동양챔피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세계 챔피언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이며 이미 아마츄어 국가대표를 역임하는 등 이름이 나 있던 조숙한 복싱 천재였다.
발군의 스피드와 태크닉을 바탕으로 힘찬 라이트 스트레이트, 여기에 섬광처럼 빠른 콤비네이션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그의 복싱은 최강의 “멕시칸 듀오”인 미구엘.칸토와 구티.에스파다스를 멋지게 엮어내는 혁혁한 수훈을 세우며 당시 김성준, 김상현과 더불어 트리오 챔피언 시대의 힘찬 개막을 알린다.

당시 한국 복싱계가 배출한 챔피언들은 모두 2~3차 방어전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내려 왔지만 박찬희는 5차방어의 벽을 통과하면서 롱런 챔피언 시대를 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방어전 내역을 살펴보면 잘할 때와 못할 때가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이점은 그의 훈련량과도 직결되는 문제였고 많은 전문가들이 “노력하지 않은 천재”라고 읊조렸던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점 때문이다.

사실 박찬희가 한국 복싱에 끼친 업적은 당시 “링의 대학교수”라는 호칭을 갖고 있던 명장 칸토를 잡은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비록 다소 내리막길에 있었지만 칸토라는 인물은 그에게는 벅찬 상대였다.
당시 칸토의 위상은 올드 챔피언인 지미.와일드와 역대 플라이급 넘버 원을 다투는 선수로 당시 이미 15차 방어를 이룩한 특급 챔피언이었고, 이에 반해 박찬희는 그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 고작 10전을 기록한 신출내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박찬희의 천재성을 믿고 과감한 베팅을 선택한 당시 프로모터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프로데뷔 11전만에 특급 챔피언을 상대로 판정에 아무런 하자가 없는 승리를 거두며 챔피언에 오른 박찬희의 천부적인 복싱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느끼게 한다.

챔피언에 오른 박찬희는 이후 5차례의 방어전에서 냉.온탕을 오가는 경기력을 보였지만 당시 최고의 인기 복서로 자리 잡았으며 이러한 그의 위상에 따라 프로모터는 평균 2~3개월만에 경기를 갖는 가히 살인적인 방어전 스케줄을 잡아 주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박찬희는 79년 12월 또 한명의 특급 멕시칸 하드펀처인 전 WBA 플라이급챔피언 구티.에스파다스를 3차 방어전에서 만났고, 70년대 대미를 장식하는 이 시합은 박찬희가 꽹꽈리를 맡고 에스파다스가 장구를 맡은 KO를 위한 2분 44초 짜리의 멋진 변주곡이었다.    
역사에 If를 가정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 인것은 알지만, 만약 박찬희가 현재의 시스템 처럼 충분한 훈련량과 시간을 갖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방어전에 임했더라면 복싱 팬들은 10차 방어를 넘기는 롱런 챔피언을 훨씬 앞당겨 보았을 것이다.

1980년 5월18일 한물간 전 챔피언 오구마.쇼지를 6차 방어전 상대로 선택한 박찬희는 쉬어가는 방어전으로 생각하며 링에 오르는 우를 범했고 일본 복서 특유의 끈적한 복싱을 펼치는 오구마의 보디 블로우에 안방에서 침몰 하면서 복싱 팬들에게 참담함을 안겨 주었다.
이후, 복수를 다짐하며 적지 일본 링에 원정하여 오구마에게 두차례 도전을 하였지만 후반 스테미너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분루를 삼키며 그의 짧지만, 누구 보다도 화려했던 복싱 인생을 마감한다.



PS. 박찬희 챔피언은 은퇴 이후 복싱계에는 두문불출하며 자신의 일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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