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세계 챔피언 현 동양 챔피언 현 한국 챔피언 역대 세계 챔피언 역대 동양 챔피언 역대 한국 챔피언 세계타이틀 전사
역대 세계 챔피언
김 태 식
영문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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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전적 :
“KOREA BOXNG WORLD CHAMPION HISTORY\"
“세계 챔피언”은 실력만으로 될수 없다 라는 복싱계 속설이 있다. 어떤 이는 한술 더 떠 “운칠기삼” 이라는 말로 세계 챔피언을 표현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실력이 없으면 운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1965년 12월 서강일 선수가 세계 도전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래, 한국복싱은 지금까지 43명의(WBA, WBA, IBF 타이틀수 51개) 세계챔피언을 탄생 시켰다. 이중에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도 있지만 복싱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들도 있다.
한국복싱 70여년의 역사중 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43개의 성상들을 REMIND 해본다.


제8편 Tae-Shik, Kim
WBA FlyWeight Champion
“제동 장치가 고장난 빨간색 스포츠카”  

김 태 식
출 생 1957년 7월 4일 / 묵호
신 장  162cm
통산전적  20전 17승(13KO) 3패 <1977.9.30 ~ 1982.9.4>
소 속   원 진
매니저  김규철
스타일  라이트 인파이터
타이틀  WBA 플라이급(1980) / 1차방어


김태식만큼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산한 복서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치열했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에 그것도 아마츄어 경력도 없이 단 14전만에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김태식은 타이틀을 획득하는 경기가 너무나도 강렬해 단번에 대중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데뷔전에서 당한 느닷없는 KO패를 극복하고 이후 내리 10연속 KO승을 구가하며 세계 정상에 올랐건만 뛰어난 공격력에 비하여 다소 허술한 디펜스로 인하여 1차 방어전에서부터 턱뼈가 깨지는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하지만 프로복싱의 본질을 정확하게 통찰한 김태식의 박진감 넘치는 팬 서비스는 복싱팬들을 열광케 하였고 관계자들로부터 언제나 환영받는 것이었으며 김태식만이 복싱을 복싱답게 하는 선수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온몸을 내던지는듯 쏟아붓는 레프트훅에는 가공할 위력이 숨겨져 있었고, 단발펀치의 위력 또한 다이너마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파워가 있었다. 거기다 상대를 밀어붙이는 힘과 거친 공격력 그리고 자신의 신체를 담보로한 처절한 데쉬는 그의 주된 레퍼토리여서 상대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자신이 눕는 매우 극단적인 결론이 반복되는 경기를 보여주어 이 또한 팬들이 김태식에게 열광케한 이유이다.

지금 까지도 많은 팬들은 김태식을 떠올릴때 그의 타이틀 획득 경기인 루이스.이바라전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김태식 복싱의 진수를 보여준 경기는 사실 그 한해전인 1979년 11월18일 전초전으로 치루어진 일본의 이가라시전이다. 이가라시 선수는 이미 79년 5월에 당시 WBC 챔피언 박찬희 1차방어 상대로 잘싸우고 판정으로 물러난적이 있는 나름 수준급의 선수였다.
이러한 전력의 이가라시 선수를 전초전 상대로 맞은 김태식은 그야말로 자신의 복싱이 무엇인지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다이내믹한 움직임과 폭발적인 공격력을 다 보여주고 4R에 상대방을 내동이쳐 버린 것이다.
이 경기를 보면서 팬들은 왜 김태식의 닉네임이 “독일병정” “작은거인”인가를 느꼈을 것이며 마치 후진기어가 고장난 스포츠카를 연상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김태식을 보며 과감한 베팅을 선택한 프로모터는 베툴리오.곤잘레스라는 명챔피언을 누르고 챔피언에 오른 스피드와 테크닉을 갖춘 루이스.이바라를 홈림으로 불러들여 김태식에게 맡긴다. 그러나 김태식은 거침이 없었다. 한국복싱 역사상 가장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수준급의 챔피언인 이바라를 단 2R만에 링바닥에 내동이치며 김태식이라는 이름 석자를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 시킨다.

당시 최고의 인기복서로 자리잡은 김태식은 1차방어를 어렵게 넘은후 2차 방어를 위해 마나먼 LA 원정길에 올라 피터.마테블라를 맞아 사실상 이긴 경기를 하고도 타이틀을 어이없게 풀고 말았다.
와신상담 김태식 본인과, 흥행보증 수표인 김태식의 상품성을 잊지 못한 프로모터의 비즈니스가 맞물려 이번에는 WBC 챔피언 안토니오.아벨라를 홈링으로 불러 들였지만, 현격한 하드웨어의 차이를 느끼며 뼈아픈 패배를 당하면서 사실상 김태식의 복싱 인생은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짧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김태식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강렬한 방법으로 링을 통치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고, 전성기 시절에는 길거리를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유명세를 치루기도 했다.
그가 추구했던 복싱에 대한 본질은 팬들을 위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나도 얌전하게 복싱을 할수 있어. 그런데 이건 도무지 체질에 맞지 않아. 내가 추구하는 복싱은 경기장에 온 관중들을 즐겁게 만드는 거야. 그게 바로 복서야”

그가 바로 김태식이다.




PS. 김태식 챔피언은 은퇴 이후 개인사업에 매진하다가, 현재는 김태식 복싱짐을 운영 하면서 후배 양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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