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세계 챔피언 현 동양 챔피언 현 한국 챔피언 역대 세계 챔피언 역대 동양 챔피언 역대 한국 챔피언 세계타이틀 전사
역대 세계 챔피언
김 철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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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BOXNG WORLD CHAMPION HISTORY\"
“세계 챔피언”은 실력만으로 될수 없다 라는 복싱계 속설이 있다. 어떤 이는 한술 더 떠 “운칠기삼” 이라는 말로 세계 챔피언을 표현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실력이 없으면 운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1965년 12월 서강일 선수가 세계 도전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래, 한국복싱은 지금까지 43명의(WBA, WBA, IBF 타이틀수 51개) 세계챔피언을 탄생 시켰다. 이중에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도 있지만 복싱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들도 있다.
한국복싱 70여년의 역사중 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43개의 성상들을 REMIND 해본다.


제9편 Chul-Ho, Kim
WBC SuperFlyWeight Champion
“19세 소년이 일으킨 상크리스코발의 쿠데타”  

김 철 호
출 생 1961년 3월 3일 / 오산
신 장  168cm
통산전적  24전 19승(9KO) 2무 3패 <1978.10.7 ~ 1983.10.23>
소 속   극 동
매니저  전호연
스타일  라이트 파이터
타이틀  KBC Jr.밴텀급 (1980), WBC S.플라이급(1981) / 5차방어


전혀 기대하지 않은 승전보를 전하며 일약 세계 챔피언으로 뛰어 오른 김철호는 한국이 배출한 챔피언 중에 가장 신데렐라적 성향이 짙은 인물이다.
프로 데뷔 3전째 배석철을 판정으로 요리한 것과 노장 하경주와 무승부를 기록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할 실적이 없어 경험을 쌓는 차원에서 적지에 내보낸 세계 도전이었지만 승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김철호의 것이었다. 사실 1981년 1월 24일 베네주엘라의 상크리스코발에서 벌어진 김철호의 세계정상 도전의 원래 주인인 같은 극동 소속의 자타공인 유망주인 이승훈이었지만, 운명의 신은 김철호를 세계 챔피언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승훈의 대타로 이제 겨우 갓 한국 챔피언에 오른 만19세의 애송이 김철호에게 세계 도전의 임무를 주었지만, 소속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팬들조차 전혀 타이틀 획득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복싱의 전성기인 이 시절에 세계 타이틀 도전은 홈, 원정을 막론하고 엄청난 관심을 끌었고, 당연히 생중계 방송이 따랐지만, 김철호의 도전은 가망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중계방송 조차 포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결론적으로 볼때 김철호의 잠재력을 간파하지 못한 실수였다.
김철호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엄청나게 치열하고 선수층이 두꺼운 한국 경량급 복싱계에서 6연속 승리를 거두며 신인왕에 올랐고 이후 한국 챔피언에 오를때 까지 착실하게 내실을 다지며 실력을 쌓아온 조용한 강자였다.  더구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성실함과 침착성으로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자신을 믿은 결과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혹자들은 당시 챔피언 오로노가 맹장 수술을 받은지 얼마 안되었고 경기중 운좋게 바로 이 수술 부위에 김철호의 럭키성 펀치가 터져 이겼다고 했지만, 이 같은 풍문은 조금 과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결국 김철호의 승리는 본인 노력의 결과이며 실력라고 할수 있다.

아무튼, 김철호는 후에 명챔피언이 되는 일본의 와타나베.지로 선수를 1차방어에서, 최강의 지명 도전자인 미국의 윌리.젠슨을 2차방어에서 완벽하게 격파했으며, 이후 3연속 KO방어를 기록하는 등 자신의 이미지를 철저하게 바꾸어 나가면서 본인에게 주어진 임무를 100% 완수한 것으로 보였다.
꾸준하게 밀어붙이는 점진적인 파이터로 펀치력은 그리 대단치 않았으나 집요할 정도로 파고드는 인파이팅과 접근전에서 터지는 숏펀치 구사 능력은 상당한 파괴력을 장전하고 있었고, 승리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던 3번의 방어전을 멋지게 뒤집는 역전 승리를 거두어 그의 복싱 실력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팬들의 마음을 확신으로 돌려 놓았다.

그가 챔피언으로 활약하던 당시에는 꽤 많은 유망주들이 세계 도전에 나서 무참한 패배를 당하고 돌아왔다. 그 때문인지 그에게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철호는 지명 도전자인 라울.발데스를 맞은 5차 방어전에서 악전고투속에 무승부 방어를 하면서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더니 복수의 일념에 불타고 있던 오로노와의 리턴매치에서 강력한 펀치에 일방적으로 내몰려 챔피언 벨트를 풀고 된다.
1982년 11월 28일 장충체육관에서 옵션에 의한 6차 방어전으로 벌어졌던 이 경기는 복싱 팬들의 눈을 감게 하는 장면이 연속적으로 펼쳐졌던 억몽의 매치로 결국 김철호에게는 이 한번의 패배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되어 21살의 어린 나이로 링을 떠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PS. 김철호 챔피언은 은퇴 이후 88프로모션의 대표로 활발하게 활동 하면서 문성길, 김용강 등의 세계 챔피언들과 수많은 유망주들을 양성 하였고, 현재는 복싱계를 잠시 떠나 개인 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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